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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서적 읽기

찰리 멍거의 말들 - 지쳐가고 있었을 때, 나를 찾아온 책

by stoploss 2025.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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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벌써 5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

한 권 읽을 때마다 단 1%만 올랐어도 내 투자 수익률은 50%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투자 책을 읽어도 내 실력은 늘지 않았다. 사실 내용이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한 번 보고 덮을 책들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다시 보지 않았다. 책에서 알려준 것들도 거의 실천하지 않았다...

 

나는 대체 왜 주식 책을 읽고 있는 걸까?


큰 손실, 뇌동매매, 그리고 조급함. 무엇이라도 얻기 위해 책을 한 권씩 읽었다.

아마도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만 같다. 그것은 실낱 같은 ‘희망’ 인지도, 아니면 투자 고수의 '비법'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연히 그런 비법이 있다면 당연히 2만 원짜리 책에 팔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조급하게 비법같은 것을 찾아 헤매는 독서를 계속하면서,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리딩 방에 400만원, 주식 교육 수업에 300만 원을 지불했지만 얻은 것은 없었다. 

주식 책에 투자한 100만원 정도는 적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제대로 책을 '읽지'않고 있었다. 

나는 책을 눈으로 훑고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마 정확할 것이다.

 

비법 찾아 삼만리 라는 표현으로 대변되는, 조급하고 간절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이 책을 읽게 됐다. 

책 표지
책 표지

책 한권 들고 무작정 버스에 오르다 

"찰리 멍거의 말들"이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워런 버핏의 파트너이자 오랜 친구인, 찰리 멍거의 말을 모아놓은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사고나서 든 생각은 돈이 조금 아까운 느낌이 들었다. 한쪽에 한 두 문장이 다였다. 그나마도 이미 세간에 널리 알려진 표현들이 상당수였다. 결국 책을 펼친 지 두어 시간 만에 다 읽어버렸다. 떨떠름했다. 뭔가 속은 느낌도 들고, 그냥 허무했다.
한 번 더 읽어야 할까? 고민하던 중.. 회사 게시판에는 여름 휴가 일정을 적으라는 종이가 붙었다.


내게는 힐링이 필요했고, 여름 휴가를 겸해 이 책을 다시 읽기로 결심했다.

 

책 한권 들고 무작정 버스를 탔다. 강원도다. 군 생활을 마치고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이 쪽으로는 오줌도 싸고 싶지 않았다. 군 생활은 내게 지옥이었다. 아니, 지옥 이상이었다. 실천은 하지 못했지만 당시 나는 마음으로는 수백 번 탈영했고, 수십 번 죽음을 택했다. 그러던 중에 김일병 사건이 터졌다. 솔직히, 나는 김일병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나는 나 혼자 죽으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떠올라 그러지 못했었다. 나을 태어나게 해 주신 어머니가 나를 또 살린 셈이다. 

 

하지만 김일병은 복수도 했고, 살아 있지 않은가.

 

창밖으론 짙은 녹음이 무성해 있었고, 논과 밭 사이로 바람이 스치는 결이 눈에 보였다. 멀리 산자락은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뭉터기에 부분 부분 덮여 한층 푸르게 보였다. 이 책은 여행길에 특히 잘 어울리는 책이다. 짧은 글들이 모여 있어, 한두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은 뒤 그 문장을 천천히 곱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짧은 내용 덕분에 차에서 책을 읽어도 멀미가 없었다.

 

이어폰 속에서는 JULY의 My Soul이 흐르고, 이어 어쿠스틱 카페의 Last Carnival이 잔잔히 이어졌다. 피아노의 맑은 음이 투명하게 번지고, 바이올린 선율이 부드럽게 이어질 때, 책 속의 한 문장이 마음 깊숙이 내려앉았다. 나는 페이지를 덮고 창밖을 오래 바라봤다. 그런데 자꾸만 책 내용이 아닌 과거 군 생활이 떠올랐다. 

 

내게 필요한 건 총알 한 발이었나?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며 군 생활을 되새기다 문득, 지옥 같았던 gop 생활과 주식 시장이 놀랍도록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매일 밤 실탄을 들고 근무 투입을 하고, 선임병에게 맞거나 욕을 먹을까봐 떨면서도 국방부 시계는 계속 흘렀다. 나 또한 선임이 되면서 점점 변해갔다. 마찬가지로 매일 오전 09시 땅 하면 매매를 시작해서, 바들바들 떨면서 매매했던 나도 점점 겁이 없어져만 갔었다. 큰 손실 이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했지만 결국 시간은 꾸역꾸역 흘러만 갔다. 나는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격언은 군 생활에도 적용되어서, 아프던 것도 '짬 먹으면서 다 나았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왜 그리 긴장하고 고작 20~21살인 고참들에게 그리 휘둘렸을까 싶었다. 왜 나는 용감하지 못했나. 왜 나는 현명하지 못했을까. 이런 무의미한 결과론의 상념이 찾아온다. 하지만 담배 연기처럼 금방 흩어져 갔다. 

 

시시각각 변하는 호가창을 보며 스릴감과 공포감에 흔들리던 내 모습이 보인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함, 그리고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던 충동까지도.

그때서야 나는 왜 50권이 넘는 책을 읽고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결국 나는 책에서 ‘지식’이나 ‘지혜’를 찾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마치 군생활을 한 방에 끝내고 싶어 했던 것처럼, 투자라는 지옥 같은 상황을 한 방에 끝내줄 ‘비법’, 즉 ‘총알’ 한 발을 찾아 헤맸다. 최전방의 병사가 휴가를 손꼽아 기다리듯, 나는 급등주 하나로 모든 손실을 만회하고 이 시장을 떠나리라는 헛된 희망에 매달렸다. 그러다 더 큰 손실을 입었지만 말이다.

 

빨리 부자가 되려는 욕망은 무척 위험하다

이 책의 첫 문장이다.

복잡한 차트나 기법을 말하지 않는다. 산업 전망에 대한 매크로 분석론도 없다. 그저 조급한 마음에 대해 화두를 던졌을 뿐이다. 

 

일확천금은 위험하다.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 똑똑한 것보다 더 유용하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


텅 빈 여백이 많은 이 책은, 마치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듯했다. 강원도의 풍경과 잔잔한 음악, 그리고 과거의 아픔이 한데 어우러지며 문장들은 저마다의 의미로 살아났다. 특히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라는 말이 가슴을 쳤다. 내 그릇은 조급함과 탐욕, 공포로 이미 금이 가 있었는데, 거기에 무엇을 담을 수 있었겠는가. 리딩 방과 비싼 강의는 그저 깨진 그릇에 억지로 물을 붓는 행위였다.

 

결국 조금씩 준비하면서 기회를 기다리고, 그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기 위해 또 준비해야 한다는 것.

 

멍거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라고, 그리고 긴 안목으로 바라보며 ‘적정한 가격에 사서 오래 버티라’고 말한다. 요란한 단타보다 진득한 인내가 낫다는 이 원칙은, 단순하지만 실천하기 어렵다. 나는 다시 책을 펼쳤다가 또 덮었다.  한 문장을 읽고, 그 의미를 창밖의 풍경과 함께 흘려보냈다. 마치 음악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다음 곡을 틀지 않는 것처럼, 문장의 울림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

 

마치며: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야 겠다

이번 여행은 힐링이 목적이었지만, 나는 투자의 본질과 삶의 태도를 돌아보는 순례길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더 이상 다른 투자 서적을 찾아 헤매지 않기로 다짐했다. 대신, 먼지가 묻은 채 책장에 꽂혀 있던 50권의 책 중 단 한 권이라도 제대로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이제 한 챕터를 읽으면, 반드시 한 문단으로 요약하고, 실천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찾아낼 것이다. 시장의 소음이 들릴 때면 이 책을 들고 떠났던 강원도 여행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게 나의 그릇을 먼저 단단히 만들고, 아주 천천히 채워나갈 것이다.

 

20년 넘게 시간이 지나서 그런가, 내가 근무했던 곳은 부대가 아예 없어진 곳도 있었다. 왜 나는 아직도 당시의 고통을 털어내지 못하는 걸까? 당시 다친 흉터를 어루만진다. 이제 만져도 아프지 않다고, 내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ㅇㅇ
합리적 판단은 의무다.

 

서울로 돌아와 버스에서 내렸을 때, 작은 희망이 내 가슴속에 가득 찼다. 예전처럼 부자가 되리라는 꿈틀대는 희망이 아니었다. 그저, 천천히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자는 잔잔한 희망이었다. 소중한 희망이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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